동전을 보관할 곳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7월 5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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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드릴 없이 조개껍데기에 구멍을 뚫는 가장 좋은 방법

액면가의 '2천만배'에 팔린 1894년 미국 10센트 동전

(댈러스=연합뉴스) 장현구 특파원 = 올해로부터 122년 전인 1894년 주조된 미국 10센트 동전이 경매에서 액면가의 2천 만배에 팔려 화제에 올랐다.

8일(현지시간) 미국 언론에 따르면, 미국 플로리다 주 탬파의 플로리다 연합 화폐박람회에서 전날 오후 진행된 경매에서 '1894-S 다임'(10센트)으로 불리는 동전이 199만7천500달러(약 23억9천600만 원)에 낙찰됐다.

이 동전은 1894년 샌프란시스코 조폐창에서 주조된 24개의 10센트 동전 중 하나다. 당시에 만들어진 동전 중 현재 9개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와 코인팩트닷컴 등에 따르면, 9개 중 7개는 시중에서 유통되지 않았고, 2개는 심각하게 마모됐다고 한다.

수집을 전문으로 하는 화폐애호가들 사이에서 1894-S 다임은 1804년에 주조된 1달러 동전, 자유의 여신상 얼굴이 들어간 1913년 리버티 헤드 니켈(5센트) 주화와 함께 희소성이 아주 높은 동전으로 손꼽힌다.

1894-S 다임은 2005년 경매에서도 130만 달러에 팔렸는데, 이번에 그 기록을 넘어선 것이다.

평생 3천만 개의 동전을 평가해온 화폐전문가 데이비드 홀은 A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100년간 희귀한 동전 중에서도 가장 희귀한 것 중 하나"라면서 "이날 경매에 나온 동전은 놀라울 정도로 완벽한 상태를 유지했다"고 평했다.

마모가 없는 상태임을 고려할 때 이 동전은 유통되지 않은 7개의 동전 중 하나로 보인다.

그는 1894년 당시 미국이 경제 침체를 겪었고, 10센트 동전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기에 딱 24개의 동전만 주조했다고 설명했다.

경매를 담당한 헤리티지 옥션의 수석 화폐전문가인 마크 보카르트는 "누군가는 책상 서랍에, 어떤 이는 은행 계좌에 소중한 동전을 보관하고 있을지 모른다"면서 지금껏 공개되지 않은 동전의 진본을 가진 소장자에게 1만 달러의 상금을 내걸고 동전 추적에 나서고 있다고 소개했다.

동전을 보면 나라가 보인다! 국가별 재미있는 동전이야기

신용카드와 스마트폰으로 결제하는 이른바 ‘핀테크’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카드와 모바일 결제가 워낙 편하다보니 현금은 커녕 지갑조차 두고 다니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경우만 해도 현금으로 결제한 것이 언제쯤인지 당최 기억조차 나질 않습니다.

지폐도 이러한데 하물며 동전은 오죽할까요. 출근길 버스요금을 낼 때, 점심 먹고 자판기 커피를 뽑아먹을 때, 오락실에서 게임을 할 때 꼭 필요한 것이 동전이지만 요즘은 일상에서 찾아보기가 도통 쉽지가 않습니다. 어린 시절 하루 용돈 백원이면 오락실에서 게임 한 판을 즐기고 쮸쮸바 하나를 먹었던 시절을 떠올려 보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네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 됐지만 동전은 우리 기억속에서, 가끔은 일상 속 작은 재미를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 누군가에게는 매력적인 수집의 대상이 되기도 하구요. 오늘은 동전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한 나라의 화폐에는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녹아있다는 사실, 잘 알고 계시죠?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들의 동전은 어떤 모습이고 또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함께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도시의 성장과 함께 탄생한 동전

지금에야 지폐와 동전이 나라마다 똑같은 모양으로 통용되고 있지만 화폐가 없던 옛날에는 물물교환하거나 조개껍질, 소금 등 물품화폐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교환 횟수가 늘어나고, 교환한 물건의 보관과 운반에 어려움이 생기면서 보다 쉬운 거래를 동전을 보관할 곳 위한 화폐가 탄생했습니다.

초창기 화폐는 금속이었습니다. 물물교환에 비해 이동성, 보관성은 좋았지만 일정한 모양이 없어 통용되기 어려웠는데요. 때문에 금속을 녹여 일정한 무게와 모양으로 화폐를 만든 ‘주조화폐’ 가 실질적인 화폐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조화폐’는 쉽게 말해 우리가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동전’과 비슷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약속된 똑같은 모양으로 주조해 누구나 같은 가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죠.

그렇다면 세계 최초의 동전은 어디서부터 사용했을까요?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700년 소아시아에서 그림을 새겨 넣은 납작한 금속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것이 동전을 보관할 곳 세계최초 동전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 대공황, 실패의 늪에서 캐나다 인들을 일으킨 ‘범선’

주조화폐의 등장과 함께 동전이 실질적인 화폐로 통용되면서 각 나라들은 자신들만의 특색 있는 동전들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역사적 위인을 새겨 넣는가 하면, 신화와 동물, 대표적인 상징물들을 동전 도안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나라 안에서 통용되는 화폐는 그 나라 국민들 모두가 쓰는 것이기 때문에 자주 쓰는 동전에 의미있는 문양과 내용을 새겨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

첫번째 소개해드릴 나라는 바로 캐나다인데요. 캐나다의 10센트 동전 뒷면에는 ‘범선’, 즉 ‘배’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인물도, 동물도, 그렇다고 대표적인 명소도 아닌 범선이 동전 안에 새겨진 사연은 무엇일까요?

동전 뒷면의 범선은 블루노즈(Bluenose)라는이름을 가진 고기잡이 겸 경기용 스쿠너(Schooner)입니다. 1921년 만들어져 5년 연속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쥔 배인데요. 그 후에도 무려 17년 동안이나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휩쓸며 캐나다 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여준 범선입니다.

유독 이 범선의 승전보가 캐나다인들에게 큰 힘이 된 건 당시 캐나다가 대공황으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실패와 좌절만이 가득했던 당시 경제 상황 속에서 가는 곳마다 승전보를 전해주는 블루노즈호는 캐나다 사람들에게 자긍심과 자신감을 키워줬습니다. 답답한 상황 속에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리는 통쾌한 승리였던 것이죠.

*출처: 캐나다 은행박물관(bankofcanadamuseum.ca)

불안한 시기에 캐나다인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안겨준 블루노즈호는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 1955년 최초로 사람이 아닌 배의 자격으로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되었고, 이후 우표, 동전 등에 오르며 캐나다의 새로운 상징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캐나다 사람들은 이 10센트 동전을 보며 블루노즈호가 거뒀던 승리의 역사를 떠올리며 자긍심을 다진다고 하네요.


# 미국 개척사를 이끈 인디언 여인, ‘사카가위아(Sacagawea)’

두번째 소개할 동전은 많은 분들이 자주 접해보셨을 미국 1달러 동전입니다. 미국 1달러 동전에는 투박하지만 또렷한 눈매를 가진 여성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요. 그녀는 미국 개척사에 존경 받는 원주민 ‘사카가위아’ 입니다.

그녀는 1805년과 1806년에 걸친 루이스와 클락 탐험대의 통역자겸 동전을 보관할 곳 안내자로 활약한 인디언 여인이었습니다. 그녀의 활약이 있었기에 지금의 미국이 있었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시기에 활약했다고 하는데요. 그녀의 무용담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릴 적 히다차 부족에게 납치되어 그들과 함께 살게 된 인디언 여인 사카가위아. 그는 당시 미국대통령에 의해 서부개척과 루이지애아 동전을 보관할 곳 지역 매입을 위해 탐험중이던 미 육군 중위 루이스와 클라크 중위의 탐험대에 서쪽여행의 통역자로 고용되어 그들의 여행에 동행하게 됩니다.

*좌측 아이를 업은 여자도안/ 출처: 미국 화폐협회(American Numismatic Association/money.org )

1년동안의 험난한 탐험 속에서 그녀는 대원들의 목숨이 위협받는 위기의 순간이 닥쳐올 때마다 활약했습니다. 인디언들의 위협 속에서는 통역으로 평화롭게 해결하는가 하면 긴 탐험 길에 식량이 떨어지거나 대원들이 병들었을 때 인디언 여인의 지혜를 발휘해 야생양파와 식물뿌리 등을 약초로 활용해 그들을 구해냈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녀의 공으로 탐험대는 목적지인 오리건 지역의 태평양 연안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후에 미국은 사카가위아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2000년부터 그녀를 1달러 도안에 넣어 주화를 발행했습니다. 이 주화는 2000년부터 2007년까지만 발행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나 부인들의 얼굴을 새겨 넣은 도안 속에서 그녀의 등장은 이례적인 사례라고 합니다.

# 500원속에 담긴 품위와 고고함, 학

세번째는 대한민국의 500원짜리 동전입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자주 마주하게 되는 500원짜리 동전에는 영험한 동물로 알려진 학이 그려져 있는데요.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학을 신성한 동물로 대해 왔기에 그 의미는 더욱 각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은 천연기념물 202호로 지정된 겨울철새로 우리나라에서는 선비의 고고한 자태, 평화와 장수를 상징하는 신성한 동물입니다. 옛 선조들이, 특히 선비들이 그림을 그릴 때 사군자와 함께 학을 선호했던 것을 돌이켜보면, 학이라는 동물이 우리에게 얼마나 귀한 동물로 여겨져 왔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500원짜리 동전에 학이 그려진 것은 이 동전이 처음 발행된 지난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폐에는 우리 역사 속 중요한 위인들이 그려져 있고, 500원짜리보다 가치가 낮은 100원짜리에도 역사 속 인물이 그려져 있던 것을 생각해보면 500원짜리에 학이 그려지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치진 않았지만 성스럽고 영험한 동물로 여겨진 학. 우리 국민들이 학처럼 고고한 모습으로 반듯하게 살기를 바랬던 마음을 담긴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 작은 동그라미 속에 문화가 담겨있다

갈수록 동전과 지폐 등 실물 화폐를 사용할 기회가 줄어들고 있지만, 화폐 속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들 비슷했나봅니다. 특히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게 되는 동전의 경우는 무엇보다 자주 접하는 것이기에 친근하면서도 의미있는 소재들을 선택하는 경향이 뚜렷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전자결제나 카드결제가 보편화됐지만 과거 우리에겐 지폐와 동전이 생활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자주 보고 소중히 대하는 존재이기에 더 깊은 의미를 담고자 했던 것 같기도 하구요. 우리가 곁에서 쉽게 보고 지나치는 동전, 그냥 지나치기보다 그 속에 그려진 것이 무엇인지, 또 그 속에 담긴 나름의 의미는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동전을 보관할 곳

겨울철 스포츠의 꽃은 스키. 재미 있는 만큼 스키장에서의 안전도 중요시 되는 운동이다.

스키장에서의 안전사고의 원인중 90% 이상이 스키 타는 사람의 미숙과 방심이라고 한다.

잘 타지 못하면서도 잘 탈 것이라는 자기 최면에 빠져 사전 준비 운동도 없이, 그리고 다른 사람도 타는 것 나도 탈 수있다는 착각, 이 정도면 잘 타는데 하는 자신감이 안전사고로 이어진다고 한다.

겨울철 스포츠의 꽃 스키장에서_1

필자도 사실은 처음 스키를 탔다.
미숙한 상태에서 말이다. 처음 스키를 탔으니 오죽하겠는가.
먼저 의무실을 찾아 보았다. 아무래도 약을 먹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였다.

무거운 스키 신발이 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였고 한참을 둘러 보아도 표시판은 있었지만 의무실이라는 글씨는 어느 곳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심야 동전을 보관할 곳 시간(밤12~4시)대를 이용하여 잘 식별하지 못한 것인지 아무튼 아쉬웠다.

온몸이 쑤셔 물품을 넣고 온 장소로 향했다. 갖고 온 보온병의 뜨거운 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물품 보관함은 500원짜리 동전 두개를 넣도록 되어 있다. 금액이 비싸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보다는 한번 열면 다시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 동전을 또 넣어야 했다.
필자는 아무데도 갈 수 없었다. 마침 지갑을 차속에 놓고 내린 상태라 문도 못 열고 열었다 하면 가족들 신발하고 가방은 어디 둔단 말인가!
한창 타고 있는 가족들을 부를 수도 없고.

어느 곳에도 식수대는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아니, 그렇다면 물도 다 사먹으라는 이야기인데. 작은 배려가 또 아쉽다. 따듯한 결명자라도 들어 있는 식수 정도는 준비해 주면 어떨까.

물품보관함은 수시로 한번 동전을 투입하면 수시로 개폐가 가능하고, 뜨거운 물 정도의 식수대는 항시 마련되고, 의무실만큼은 눈에 띄는 곳에 크게 표시되어 있는 정도의 배려라면 다시 또 찾고 싶은 스키장이 될 것이고 입소문이 나서 더 나은 마케팅 전략이 될텐데.

상평통보 주조 대표 이미지

1678년(숙종 4)에 주조되기 시작한 동전(銅錢)으로 동그랗고 납작한 모양에 가운데 네모난 구멍이 뚫려있다. 호조(戶曹)의 관할하에 여러 관청과 각 도의 감영(監營)에서 만들어졌다. 앞면에 상평통보(常平通寶)라는 글자가 적혀있는데 이는 언제나 일정한 가치를 유지하며 통용되는 화폐라는 의미이다. 1892년(고종 29)에 ‘신식화폐조례(新式貨幣條例)’가 공포되기 전까지 꾸준히 주조되고 유통되었는데 시기별로 모양과 크기에 차이가 있다.

경제사의 흐름을 살펴볼 때, 화폐의 등장과 변천만큼 중요한 사안을 찾기란 쉽지 않다. 교환과 매매의 수단으로 활용된 화폐는 실물을 교환하던 물품화폐(物品貨幣)에서 금속으로 주조하는 금속화폐, 종이로 만드는 지폐를 거쳐 가상으로 거래하는 예금화폐로 발달해 나갔다. 이 중에서 금속화폐는 국가의 공인을 받은 규격화된 화폐의 등장이라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한국의 역사에서 최초의 금속화폐는 고려의 성종(成宗)이 996년(성종 15)에 주조한 철전(鐵錢)이었다. 이후 고려는 은화(銀貨)나 종이로 만든 저화(楮貨) 등을 공식 화폐로서 만들어 유통시키고자 노력하였으나 수월하게 진행되지 못하였다.

조선 역시 초기부터 공식 화폐를 사용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1423년(세종 5) 10월에 동전(銅錢)인 조선통보(朝鮮通寶)를 주조하기도 하고 명의 동전을 수입하여 국내에 유통시키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렇지만 시중에서는 동전보다 쌀과 포목이 교환수단으로 더욱 선호되었다.

상품화폐경제가 점차 발달하면서, 장거리 무역이나 시장에서의 거래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에 쌀이나 포목 같은 기존의 물품화폐가 지니는 한계가 부각되었다. 가격에 비해 부피가 커서 운반에 불편함이 있었고, 보관하는 데에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특히 동전을 보관할 곳 개성 인근 지역은 상업이 번성하면서 동전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국가의 입장에서도 동전을 주조하는 것은 재정적으로 큰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같은 양의 동이나 철을 은으로 바꿀 때에 비해 동전으로 만들어 가치를 높이게 되면 더욱 많은 양의 은과 교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차익은 동전의 주조를 주도하는 국가의 재용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동전의 주조와 유통에 대한 논의는 1592년(선조 25)의 임진왜란 이후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전란으로 농업 생산의 기반이 흔들리게 되면서 민간의 생활은 물론이고 국가의 재정도 크게 부족해졌다. 더욱이 동전을 보관할 곳 전쟁이 끝난 뒤에도 조선에 주둔하고 있던 명의 군사들에게 급료와 식량을 지급해야 했는데 이 역시 큰 재정적 부담이었다. 그럼에도 선조(宣祖)는 동전 주조의 부작용을 우려하며 동전 사용을 확대할 수 없다고 보았다.

반면 인조(仁祖)는 즉위 초부터 적극적으로 동전을 주조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1625년(인조 3) 11월부터 호조(戶曹)에서 독점적으로 동전을 만들도록 하였는데, 규모가 크지는 않아서 이듬해 6월까지 겨우 600,000닢을 주조하는 데 그쳤다. 이마저도 1627년(인조 5)의 정묘호란으로 중단되었다.

1633년(인조 11) 10월에 상평청(常平廳)의 쌀과 포목을 활용하여 동전을 다시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명의 주화인 만력통보(萬曆通寶)를 본떠서 새로운 규격의 조선통보를 주조하였다. 그러나 만들어야 할 동전의 수가 늘어나고 유통 범위도 확대되면서 호조에서 단독으로 주조하기에 무리가 따르게 되었다. 한 곳에서 만들 수 있는 동전의 수에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서울에서 지방으로 운반하는 비용도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1634년(인조 12) 2월부터는 개성과 안동에도 주조소(鑄造所)를 만들었고, 3월에는 대구에, 이듬해 2월에는 해주와 수원에도 주조소를 설치하였다. 이렇게 동전의 주조와 유통을 확대하던 가운데 1636년(인조 14) 12월에 병자호란이 발발하면서 다시금 주조는 중단되었다.

효종(孝宗)은 즉위 직후 동전을 다시금 주조하도록 명하였다. 여기에는 김육(金堉)의 주장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는 중국에 가서 동전 사용의 편리함을 눈으로 확인하고, 개성에서 관직 생활을 하면서 동전이 활발하게 사용되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 이에 적극적으로 동전 유통의 필요성을 역설하게 되었고, 효종은 이러한 주장을 지지하며 1651년(효종 2) 십전통보(十錢通寶)를 만들도록 하였다. 이후 시장에서 거래할 때 동전을 사용하도록 하고 백성들이 동전을 50닢씩 지니고 다니도록 하였다. 다소 부족한 측면이 있었음에도, 이상의 화폐 유통 시도들은 이후 숙종(肅宗)이 상평통보를 주조하고 유통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17세기 후반 상품화폐경제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시장에서의 매매 역시 활성화되고, 동시에 동전에 대한 수요도 높아졌다. 기존에는 동전보다는 은전을 많이 활용했으나, 소액 거래가 늘어나면서 동전의 필요성이 증가했고 위조된 은전이 많이 유통되면서 신뢰도가 떨어진 것도 동전에 대한 선호도를 높였다.

이에 1678년(숙종 4) 영의정 허적(許積)과 좌의정 권대운(權大運) 등은 새롭게 동전을 주조해 유통시킬 것을 제의하였다. 새로운 동전의 이름은 상평통보(常平通寶)로, ‘상시평준(常時平準)’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이는 항상 평준을 유지한다는 것으로, 상평통보는 언제나 일정한 가치를 지니고 통용되는 화폐라는 의미이다. 상평통보의 가치는 ‘1잎=1문/푼(文), 10푼=1전(錢), 10전=1냥(兩), 10냥=1관(貫)’으로 관이 가장 높은 단위였다. 당시 상평통보 400푼은 은 1냥, 쌀 10두와 교환되었다. 숙종은 동전 주조 규모를 확대하여 호조, 상평청, 정초청(精抄廳), 사복시(司僕寺), 어영청(御營廳), 훈련도감(訓練都監), 수어청(守禦廳) 등의 7개 관청에서 일제히 동전을 만들도록 하였다. 이때 만든 상평통보는 초주단자전(初鑄單字錢)이라고 불리는데, 숙종이 친히 완성 상태 등을 점검했다고 한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동전을 주조하려고 하니, 원료의 부족이 문제로 떠올랐다. 동광(銅鑛)의 개발이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동전은 대부분 일본에서 들여온 동으로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원료를 꾸준히 공급받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상평통보의 동전을 보관할 곳 규격과 가치를 조정하고자 1679년(숙종 5)부터는 당이전(當二錢)/절이전(折二錢)으로 불리는 대형전(大型錢)을 주조해 발행하기 시작했다. 초주단자전과 구별하기 위해 대형전에는 뒷면의 아래쪽에 ‘二’라는 글자를 새겨 넣었다. 이와 동시에 비변사(備邊司)에서는 상평통보의 가치를 2배로 인상하여 상평통보 200푼을 은 1냥과 통용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상평통보의 유통이 본격화되기도 전에 동전의 가치가 변동되자 민간에서는 혼란이 발생하였다. 이에 몇 달 뒤에 다시 원래의 가치로 되돌려야만 했다. 그러나 이미 민간에서는 상평통보에 대한 화폐로서의 신뢰도가 떨어진 상태여서 1680년(숙종 6)에는 동전을 보관할 곳 시장가치가 절반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처럼 동전에 대한 불신이 생겨나자 이를 해결하고 동전의 사용을 촉진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제기되었다. 우선 세금을 돈으로 내도록하는 금납화(金納化)가 추진되었다. 또한 서울의 시전(市廛)에 3년 동안 이자를 받지 않고 돈을 빌려주어 동전을 매매에 활용하도록 장려하였다. 상평통보의 가치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장하여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은과의 교환비율을 고정해두고 관청에서 언제든지 교환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각 관청별로 만들 수 있는 상평통보의 수를 제한하여 일정한 양의 동전이 시중에 유통될 수 있도록 조정하였다.

이러한 중앙의 노력과 함께 동전에 대한 시대적 요구에 힘입어 상평통보의 사용은 빠르게 증가하게 되었다. 동전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원료의 부족이 자주 문제시되었다. 더욱이 금속화폐의 특성상 동전은 거래 수단임과 동시에 그 자체가 재산으로서의 가치를 지녔는데, 상평통보 역시 그 자체를 재물로 여기고 모아두려는 경향이 있어 시중에 유통되는 양은 주조된 동전의 양보다 훨씬 적었다. 끊임없이 동전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면서 원료의 부족에도 만성적으로 시달려야 했던 것이다.

이에 1752년(영조 28)에는 좀 더 작은 상평통보인 중형전(中型錢)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중형전의 가치는 대형전과 동일했지만 중량이 가벼워졌고 크기도 작아졌다. 5년 뒤에는 중량을 좀 더 줄였고 1807년(순조 7)에는 아예 소형전(小型錢)으로 규격이 바뀌게 되었다. 이처럼 크기와 중량이 줄어들게 된 것은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는데 동전을 만들 원료는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가치는 동일하면서 투입해야하는 원료의 양이 적어지면 동전을 만들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늘어나게 되므로 국가 재정에도 도움이 되었다.

상평통보의 주조는 적게는 2배, 많게는 5배의 시장 가치를 형성하였다. 이 이익을 국가가 전적으로 취하기 위해 중앙에서는 동전을 보관할 곳 상평통보의 주조와 발행을 철저하게 관리 감독하였다. 사적으로 동전을 주조하는 행위는 사형을 선고할 정도로 엄격하게 금지하였다. 그런데 동전의 사용이 보편화되고 지방까지 유통되면서 여러 관청에서 동전을 만들다보니 다소 관리가 소홀해지게 되었다. 이에 1785년(정조 9)에는 호조가 상평통보 주조 업무의 총책임을 동전을 보관할 곳 동전을 보관할 곳 맡아 일원화된 관리체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순조(純祖)가 즉위한 이후 점차 민간에서의 동전 주조가 용인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다.

상평통보는 납작하고 둥근 모양에 중앙에는 네모난 구멍이 뚫려있다. 이처럼 동전의 중앙에 구멍을 만든 것은 실로 꿰어서 휴대하기 편하도록 한 것이다. 상평통보의 앞면에는 상하좌우에 ‘常平通寶’를 한 자씩 새겨두었는데, 만들어진 시기에 따라 동전의 크기가 조금씩 다르고 이름도 초주단자전, 대형전, 중형전, 소형전 등으로 각기 달랐다. 또한 주조한 기관에 따라 뒷면에 새기는 글자도 달라졌다.

초주단자전은 1678년(숙종 4) 발행된 상평통보로, 뒷면에 아무 글자도 없거나 상단에 동전을 주조한 관청의 이름을 축약해서 새겨둔 것이 일반적이다. 관청의 이름은 호조를 ‘戶’, 어영청을 ‘營’으로 표기하는 식으로 한 글자만 따서 새겨두었다. 현재까지는 36가지의 관청명이 새겨졌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1닢의 중량은 1전 2푼으로 4.5g 가량이었다.

1년 동전을 보관할 곳 뒤에는 대형전인 당이전이 주조되기 시작하였다. 당이전은 절이전이라고도 불렸다. 초주단자전보다는 크기가 커졌고 중량은 2배 정도 무거워진 2전 5푼으로 약 8.4g이었다. 동시에 동전 1닢의 가치는 4배로 증가하였다. 뒷면의 아래쪽에는 ‘二’자를 새겨서 초주단자전과 구분하였다. 상평통보의 유통이 확대되면서 민간에서의 동전 위조가 증가했는데, 이를 막고자 1690년(숙종 16)에는 상평통보 뒷면의 하단에 ‘二’자 대신 주전소를 표시하는 글자를 천자문 순서대로 새기게 하였다. 예를 들어 호조 산하의 주전소가 20곳이면 각 주전소에 천자문을 한자씩 순서대로 배정하고 각각 주조하는 동전의 뒤쪽에 해당 천자문을 새기도록 한 동전을 보관할 곳 것이다. 동시에 주전소별로 동전을 만드는 장인들의 명부를 작성해 관리하면서 동전의 질을 유지하고 위조된 동전을 쉽게 구분해 내도록 하였다.

1752년(영조 28)에는 작은 크기의 중형전이 만들어졌다. 액면 가치는 대형전인 당이전과 동일했지만 중량은 1전 7푼으로 줄어들었고, 5년 뒤에는 이를 더욱 줄여서 1전 2푼 무게의 동전을 주조하였다. 중형전의 뒷면에는 주조한 관청의 이름이나 천자문 외에 오행(五行)인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 중에 한 글자가 새겨졌다. 이에 중형전은 오행전(五行錢)이라고도 불렸는데 점을 치는 이들에게 애용되었고 민간에서 복을 가져오는 물건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고 전해진다. 이외에 숫자가 새겨지기도 했고, 해(○), 달(⊂), 별(●)을 나타내는 기호가 새겨지기도 하였다. 동전을 만드는 곳이 늘어나고 불법적인 위조도 증가하자 동전에 다양한 표식을 새겨서 공인된 상평통보임을 확실하게 동전을 보관할 곳 표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1807년(순조 7)에는 동전의 크기와 중량이 더욱 줄어든 소형전이 발행되었다. 이처럼 동전의 크기가 점점 줄어들었던 것은 상평통보의 원료인 동의 국내 생산량이 턱없이 낮았기 때문이다. 동전을 만들 때 쓰는 동은 대부분 일본에서 들여온 것이었는데, 여기에 주석(Sn)이나 아연(Zn), 납(Pb)을 더하여 상평통보를 주조하였다. 철(Fe)은 일부러 첨가되지는 않고 불순물 상태로 존재하는 정도였다.

동전의 주조는 원료를 화로에 녹여서 쇳물을 만들고 형틀에 붓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형틀은 여러 개의 동전이 서로 연결되는 모양으로 제작하여 한꺼번에 다수의 동전을 만들 수 있도록 하였다. 형틀에서 굳힌 것을 하나씩 잘라서 매끈하게 다듬었는데, 떼어내기 전의 모습이 나뭇가지에 달린 잎과 비슷하다고 하여 상평통보를 엽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동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70여 종류의 기구가 사용되었고, 각 공정은 여러 단계로 나뉘어 분업화되었다.

거래 수단으로서의 동전은 개성 인근에서 이미 1640년대부터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었고, 1650년대에는 평안도 일부 지역까지 동전의 사용이 확산되었다. 그러나 공식 화폐로서 동전이 전국에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숙종이 상평통보를 주조할 것을 결정한 이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상평통보의 유통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지는 못했다. 금속화폐의 특성상 동전 자체가 재물로 인식되었기에 상평통보는 주조하는 양에 비해 시중에 유통되는 것이 많지 않았고 집안에 쌓아두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국가는 세금을 돈으로 납부하게 하거나 시전 상인들에게 동전을 공급하면서 동전의 사용을 권장하였다.

상평통보의 유통 지역이 확산되고 화폐로서의 지위가 굳건해지자 민간에서 이를 불법적으로 주조하는 경우가 증가하였다. 진짜와 비슷한 형태의 동전을 사주(私鑄)한 것이다. 이러한 위조 동전은 시중에 갑자기 많이 유통되면서 물가를 불안정하게 만들기도 했고 낮은 품질로 인해 상평통보 자체에 대한 불신을 낳기도 하였다. 중앙에서는 일시적으로 동전 주조를 중단하면서 유통되는 동전의 양을 조절하고자 하였으나 사주 자체를 근절하지 않는 이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웠다. 이에 사적으로 동전을 주조할 경우 사형으로 다스리고 이를 제보한 사람에게는 도둑을 잡은 것에 버금가는 포상을 내리기로 하였다. 그러나 동전의 주조는 막대한 이득을 가져왔기 때문에 생명을 걸고 위조하는 이들이 줄지 않았고, 각 관청에서 동전을 만들었던 장인들도 사주에 가담하는 사례가 증가하였다. 숙종은 상평통보 위조를 주도한 이는 교수형에 처하고 제작을 담당한 이는 한 등급 아래의 형벌을 내리도록 했다가 사주가 줄어들지 않자 가담한 사람들은 경중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사형에 처할 것을 명하였다. 그러나 양반들이 노비를 내세워 동전을 위조하는 등 사주는 끊임없이 발생하였고 점차 성행하였다. 결국 순조는 이를 양지로 끌어내어 동전 주조에 민간의 도움을 받으면서 비용을 절감하고자 하였다.

한편 상평통보의 주조는 국내 광산업의 발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동전의 주원료를 일본에서 들여오다 보니 원료 구입비는 물론이고, 구입하는 양도 항상 문제가 되었다. 결국 1731년(영조 7) 이후에는 동전을 주조하면서 필요한 원료를 조달하기 위해 동광(銅鑛)을 개발하여 임시적인 채굴을 허용하였다. 동전의 주조와 유통의 확대가 동광을 개발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1892년(고종 29)에 ‘신식화폐조례(新式貨幣條例)’가 공포되기 전까지 활발하게 사용된 상평통보는 200여 년간 조선 사회를 조금씩 바꾸어 나갔다. 화폐경제가 확대되면서 상업의 발달이 가속화되었고, 일상의 계산 방식에서도 쌀이나 포목이 아닌 돈이 기준단위가 되었다. 금속화폐가 물품화폐를 대체하게 된 것이다. 상품의 매매나 세금 납부, 소작료 지급 등을 동전으로 해결하면서 조선 사회는 중요한 사회경제적 전환을 맞이하게 되었다.

오래된 동전 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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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많은 인정받는 상인들은 미국 화폐 연구 협회나 전문 화폐 등급 매기기 서비스 소속이다. 믿을만한 감정인을 찾는 경우 위 사이트를 사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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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부분의 상인들은 희귀한 종류의 동전들도 취급하지만, 이런 동전들은 옥션이나 개인 수집가들에게 더 좋은 값에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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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많은 관심을 끌고 합당한 가격을 받을 수 있도록 좋은 사진을 찍어야 한다. 조폐소 각인과 문자가 잘 보일 수 있도록 밝은 곳에서 작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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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 신문에 광고는 되도록이면 피하자. 안전한 곳에서 거래를 하더라도, 당신의 동전이 도둑들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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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션은 최후로 정해진 가격의 10-15%를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에게 요구한다. 옥션으로 동전 매매를 할 때는 이 요금을 염두에 두고 이익을 계산하라.
  • 이베이같은 옥션 사이트도 나쁘지 않지만 사기를 조심해야 한다. [9] X 출처 검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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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상인들과 잘 알려진 화폐 협회에서 신임 받는 상인들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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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한 동전은 한꺼번에 팔아버리자. 매우 넉넉한 양의 동전을 팔 때는 일괄 거래를 하는 편이 낫다. 많은 상인들은 겨우 몇 개의 동전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다. 높은 가치를 가진 동전들만 고르고 팔기 어렵고 가치가 덜 나가는 동전들은 구매하지 않을 것이다. 전제 동전에 해당하는 총 금액을 정하고 그 가격에 한해서 거래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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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득세 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거주 지역에 따른 세법을 참고하도록 하자.
  • 깨끗한 파일 비닐에 동전을 보관하자. 플라스틱은 동전의 손상을 최소화하고, 더욱이 깨끗한 슬리브는 동전을 가장 최상의 상태로 유직하도록 도와주며 구매자들의 시선을 끄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 동전을 청소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손상의 위험이 될 수 있으며 가치를 떨어뜨린다. 구매자들은 동전의 원래 상태 그대로를 선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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